TV에 인기리에 방영중인 선덕여왕 드라마를 보면서.. 문득 그 위인들의 흔적을 사랑하는 가족들과 같이 따라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바쁜 일정탓에 사용하지 못했던 여름휴가를, 가을이 시작되는 시점에 대신 사용하면서 그 생각을 실행에 옮기기로 아내와 작당하였다. 물론 애들은 현장체험학습이라는 멋진 제도를 사용하고.. ㅎㅎ
계획..
첫째날. 아침에 분당에서 출발하여 경주에 도착하면 오후 2~3시. 그때부터 부지런히 분황사, 김유신장군묘, 선덕여왕릉, 문무대왕릉, 감포항횟집..
둘째날. 아침먹고나서, 경주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포석정, 천마총, 첨성대, 석굴암, 불국사
셋째날. 태종무열왕릉, 경주국립박물관, 안압지, 오후는 물놀이..
넷째날. 밀레니엄파크, 그리고 아쉬운 귀경..
사전학습..
물론 나도 애들에게 잘난 아빠가 되기 위해서 위키에서 수시로 검색해가면서 여행을 하였고, 아래에 적은 정도의 얕은 지식은 알고있는 것이 보다 유익한 여행이 되리라고 생각하였다.
왕의 순서. 선덕여왕(덕만) - 진덕여왕(승만) - 태종무열왕(김춘추) - 문무왕
첫째날..
아침부터 부지런히 준비하여 10시쯤 출발한거 같다. (이쯤이면 아주 부지런한거 아닌가..ㅎㅎ) 애들은 모두 즐거워서 아우성을 치고, 먼저 운전을 시작한 아내의 손놀림은 아주 가볍다. 역시 여행시작의 백미는 휴게소 우동. 유난히 우동을 좋아하는 우리는 아내의 한시간반 운전 후, 모두 우동으로 간단히 배를 채웠다. 잠깐의 휴식 후 운짱을 나로 바꾼후, 다시 여행길에 올랐다. 한시간 반쯤 후, 눈이 반쯤 감긴채 손이아닌 발로 운전을 하던 나는, 다시 운전대를 아내에게 넘기고 여기저기 사진을 찍어댔다.
중부내륙고속도로를 거쳐 경부고속도로로 신나게 달리던중, 드디어.. 경주를 들어가는 이정표가 나타난다.
경주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조금 달리다보니, 천년 신라의 고도를 상징하는 멋진 톨게이트가 우리가족을 맞이한다. 다시한번 느끼지만.. 하이패스는 참 좋은것 같다. ^^ 슈슈슝~ 시내를 통과하고 보문단지에 있는 숙소로 들어갔다. 짐을 풀고 잠깐 잔디밭에서 사진찍기 놀이를 하다가, 쉴틈도 없이 다음 행선지인 분황사로 고고~ ㅎㅎ
분황사. 신라 선덕여왕 3년에 창건되었으며, 대부분은 임진왜란때 불타 없어졌다고 한다. 지금은 9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모전석탑이 3층만 남아있을 뿐이다. 당시에는 솔거가 그린 관음보살상도 있었다고 전해지고, 눈먼사람도 눈을 뜨게 만드는 영험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천수대비벽화도 있었다고 한다.
멀지않은 곳에 있는 선덕여왕의 영원한 후원자 유신랑의 묘인 김유신장군묘로 향했다. 유신랑 김유신장군묘는 입구부터 그 호화스러움에 놀라게 되고 그 규모에 압도당하게 된다. 어느 왕릉에도 없는 십이지신상이 묘 기단부를 휘감고 있고 묘 중심에 으리으리한 제단이 관광객을 맞이한다. 김유신장군은 선덕여왕과의 인연뿐 아니라, 김춘추와도 색다른 인연을 갖고 있는데, 자신의 여동생을 김춘추의 아내로 보냈으며, 후에 김춘추의 딸을 자신의 아내로 맞이하였다. (이거 족보가... 음..) 또한 미실의 손녀와도 혼인을 하기도 한다. ㅎㅎ 문무왕 13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흥덕왕때 흥무대왕으로 추존되었다.. 대왕.. 그래서 묘도 왕릉의 규모만큼이나 컸던 것일까..
차를 몰고 벌판을 지나 선덕여왕릉으로 갔다. 덕만이.. 선덕여왕릉은 최근 드라마의 영향을 받은탓인지 관광객이 많았는데, 드라마 방영이전에는 별로 주목을 못받았는지, 개발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느낌을 많이 받았다. 따라서 김유신장군묘의 화려함과는 묘한 대조를 이루는 소박함과 단아함이 느껴진다. 선덕여왕은 신라의 첫 여왕이었고, 삼국통일의 기초를 마련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보위에 있는 내내 백제와의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여왕의 무능함을 명분으로 한 반란에도 시달림을 받았다. 드라마속에 등장하는 비담이 일으키는 반란을 토벌하는 중 세상을 달리하게 되는데, 모년 모월 모일 모시에 자신이 죽을것이라는 예언을 하고 그대로 승하하였다고 전해진다. 아래 사진은 선덕여왕릉으로 가는 길 입구다. 드라마 후에 얻고있는 인기에 비하면, 좀 초라해보이는 입구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울창한 소나무 숲을 지나 10여분을 올라가면 빽빽한 소나무들 사이로 선덕여왕릉이 그 아름다운 자태를 수줍게 드러낸다.
아담한 제단에는 관광객이 놓고간 추모화가 올려져있었다. 경주에서 본 왕릉중 유일하게 천연석으로 기단을 쌓고 그 위로 봉분을 올리는 독특한 디자인을 갖고 있어서, 그 아름다움이 배가된다.
선덕여왕릉에서 좀 머물다가 문무왕릉으로 향했다. 문무왕은 신라와 백제를 통일한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맏아들로, 삼국을 완전히 통일하고 당나라군대를 통일신라땅에서 몰아낸 왕이다. 그런데.. 문무왕릉은 동양유일한 해중왕릉으로 되어있다. 저 멀리 보이는 대왕암(돌섬)이 왕릉이다.. 바다에 장사지내면 해룡이 되어 왜구로부터 조국을 지켜주겠다는 문무왕의 유언에 따라 이곳에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너무나도 멋있는 유언이고..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실제로 임진왜란때 이순신장군의 승승장구에 문무왕께서 한몫을 해주시지 않으셨을까...
오는길에 감포항에 들러 회를 먹었다. 광어와 우럭의 일반적이지만 환상적인 만남. ㅎㅎ 회를 안먹는 우리 첫째아들이 처음으로 회를 20조각이나 먹은 역사적인 날이다. ^^
둘째날...
둘째날은 경주시가 제공하는 관광버스 패키지를 이용해서 돌기로 하였다. 우리가 선택한 패키지는 오전 10시에 출발하는 3호 패키지로, 순서는 포석정 / 천마총 / 첨성대 / 석굴암 / 불국사 였다.
포석정은 우리가 지금까지 배워왔기로는 신라의 귀족들이 술잔을 띄워놓고 시도 읊고 유흥도 즐겼다고 하였는데.. 최근에 출토된 여러가지 유물들로 볼때, 술마시고 놀던곳이 아니고 원래는 절터였었고 신성한 산인 경주 남산을 향해서 제례를 지낸 곳이라는 연구발표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아쉽게도 긴세월동안 유지보수되지 않은 바람에.. 500년전부터 여기저기 자란 느티나무(은행나무던가..) 뿌리로 인해 물이 맨처음 들어오는 부분이 들려져서 그 형태가 좀 망가졌다고 한다. (사진 오른쪽 나무..)
경주에 있는 수많은 왕릉중에서... 그 왕릉의 주인이 누구인지 아는 왕릉은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왕릉뿐이고 (비석이 있기 때문에 ^^) 나머지는 그 주인을 추정할 뿐이라고 한다. 황남동 대능원 한쪽에 위치해 있는 155호 고분은 국가에서 제일 처음 공식적으로 발굴한 왕릉이라고 하는데, 방사능 동위원소 측정으로 연대를 측정해보고 잠들어계신 왕의 키가 230 센티미터 쯤 되는 것으로 볼때, 신라 22대 지증왕릉으로 추측된다고 한다. 참.. 신라시대때에는 북방민족의 피가 아직 많이 남아있어서 2미터가 넘는 거인들이 왕족을 이루고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남방민족인건가.. 음..
이 왕릉 안에는 특별한 '장니'가 전시되어있다. (물론 진짜는 박물관에 있고 전시된건 가짜다! ㅎㅎ) 장니란.. 말탈때 말발굽으로부터 튀겨지는 진흙이 기수의 정강이에 묻지 않도록 자작나무 껍데기로 만들어서 종아리에 차던 물건인데.. 이 155호 고분에서 출토된 장니의 자작나무 표면에는 요상한 형상을 한 동물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출토당시에 이 그림속의 동물이 무엇인지 학계에서 의견이 분분했다고 하는데, 새마을 운동으로 탄력을 받아야하는 당시 대통령께서 하늘로 웅비하는 말로 정하자고 하셔서 천마도로 정해졌다고 하고.. 이 그림의 이름으로 인해 이 155호 고분의 이름이 천마총이 되었다고 한다. (위에 천마총이라는 휘호도 그 대통령께서 직접쓰셨다고.. ㅎㅎ) 요즘 학계는 이 동물을 기린 (동물원의 기린과는 다르단다..)으로 보는 의견이 지배적이라고 하니.. 제대로 하자면 이 155호 고분은 지증왕릉으로 추정되는 기린총..이 제대로된 명칭이라 하겠다.
첨성대.. 여러분은 첨성대가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 첨성대가 피사의 사탑처럼 뒤쪽 (아래 사진으로는 왼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최근에 급격히 기울어지고 있어서 진동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첨성대 부근의 차량통행을 차단하고 있다. 참 슬픈일이다. 아래 사진으로도 기울어지고 있는게 보이지 않는가!!! 첨성대는 선덕여왕이 별자리로 점을 치기 위하여 만든 구조물이라고 한다. 최초의 여왕이고 많은 반대세력이 많이 존재했으니, 점성술을 정치에 활용하기 위한 좋은 도구들 이었을듯 하다.
석굴암으로 간다.. 석굴암은 경주 북쪽에 위치한 토함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호흡을 토하고 다시 머금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토함산. 그만큼 산세가 험하여 차로 올라가도 99구비를 올라가야한다고 한다. 99구비를 올라가고 있다.. ㅎㅎ
결국 아내와 국민약골 둘째아들은 멀미로 인해서 차에 낙오하고 나와 국민강골 첫째만 차에서 내려 석굴암으로 향했다. 석굴암은 어느때부터인가 인적으로부터 차단되어 산속에 묻혀있다가 일본인 우편배달부가 우연히 발견했다고 한다. 다들 알고 있는 얘기겠지만, 처음에는 일본으로 가져가려고 분해를 시도했으나 천정일부를 분해하다가 포기를 했고, 일본강점기로 들어가면서 어차피 안가져가도 일본꺼라고 생각하고 복원쪽으로 방향을 전환했다고 한다. 이때 두가지 정도 대대적이고 인위적인 복원작업을 하였는데.. 하나는 시멘트를 천정외부에 떡칠한거고, 또하나는 전실 하단부에 흐르는 자연시냇물 줄기를 다른쪽으로 강제로 틀어버린것이라고 한다. 결국, 시멘트로 인해서 천정이 숨을 못쉬게 되고, 하부의 자연시냇물에 의해 늘 일정하게 유지되던 내부온도와 습도가 아침저녁으로 반복적으로 바뀌게 되어서, 큰 폭으로 바뀌는 온도차이에 적응을 못하고 습기가 내려앉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유리벽을 치고 강제 에어컨디셔닝을 실시하고 있다. 저멀리 산중턱에 왕릉처럼 생긴 석굴암 지붕부위가 보이고, 그 앞을 최근에 지은 전각이 부처임의 모습을 가로막고 있다. 다행히도 시멘트의 내구연한이 100년이므로 앞으로 몇년후에 대대적인 시멘트 제거작업을 할 계획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된 복원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석굴암속에 앉아계신 석가모니불은 언제봐도 평안해보인다. 비록 지금은 유리벽 안에서 계셔서 멀리서 눈으로만 볼수 있지만.. 사실 초등학교때부터 교과서에 무수히 봐온 한국인의 본능과 같은 보물 아닌가.. 하지만.. 하지만.. 이유를 알수없는 촬영금지 푯말로 인해서 사진을 못찍었다. 도대체 왜 사진을 못찍게 한단 말인가. 플래시금지 정도면 충분한거 아닐까?? 할수없이 한없이 평안한 석가모니불의 온화한 미소는 찍지 못하고, 전각에서 바라본 경주시내를 찍었다. 한가지 추가사항.. 석굴암 내부의 석가모니불이 지긋이 바라보고 있는 곳이.. 해룡이 되어 나라를 지켜주겠다고 약속했던 문무왕의 왕릉이라는 것을 아는가!! 이 어찌 경건해지지 않을수 있는가!!
신라의 왕조는 귀족들의 힘으로부터 왕권을 확립하고자 불교를 도입하여 국교로 채택하게 된다. 신라 23대 법흥왕때 이 움직임이 가장 활발했다고 하며, 이때 불국사가 창건된다. (참고로 선덕여왕이 27대.. ^^) 4대 주요 부처님중 약사여래를 제외한 석가모니불(대웅전), 아미타불(극락전), 비로자나불(비로전)이 모두 모셔져있고, 제일 위에는 관음보살님(관음전)도 모셔져있다. 유명한 청운교 백운교가 전면에 위치해있고 그 위로 석가탑 다보탑이 있는 대웅전앞뜰이 있다. 청운교 백운교가 계단이 아니라는 사실은 아는가? 지금은 시냇물이 말라서 없어졌지만 원래 불국사 청운교 백운교가 끝나는 아랫부분은 큰 연못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이 청운교 백운교는 연못속으로 들어가는 계단으로, 계단이라기보다는 수중세상으로의 다리라는 개념으로 만들어진거라고 하며, 그래서 다리 교자를 써서 청운교 백운교라고 한다. 연못속으로 들어가는 아름다운 계단들.. 아침이면 물안개가 자욱했다고 하니 그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이었을까..
청운교 백운교 옆쪽으로 올가가면 석가모니불이 모셔져있는 대웅전이 있고 대웅전 좌우에 너무나도 유명한 다보탑과 석가탑이 있다. 아쉽게도 다보탑은 지금 복원공사중이라서 약간의 모습만을 볼수 있었다. 전설에 따르면, 석가모니의 불법을 설법하고 있을때, 땅속에서 '그래 그 불법이 맞다'라고 소리치면서 솟아오른 탑이 다보탑이라고 한다. ㅎㅎ 이 다보탑에는 4개의 사자상이 있었을것으로 추정되는데, 3개는 지금 없어지고 1개만 남아있다. 사라진 3개는 어느 나쁜놈들의 정원에 있는걸까.. 이 다보탑 또한 일본강점기때 잘못 건드리는 바람에 빗물이 새서 복원중이라고 한다.
얼마전 무한도전에 나왔던 황금돼지다. 석가모니불이 모셔져있는 대웅전을 기준으로 왼쪽으로 아미타불이 모셔져있는 극락전이 있는데, 이 극락전의 현판 뒤에 이 돼지님이 숨겨져있다. ㅎㅎ 잘 보이는지~ ^^
세쨋날..
세쨋날은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왕릉, 경주국립박물관, 그리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안압지를 들렀다가 오후는 애들과 물놀이하는 일정을 잡았다. 첫 여정인 태종무열왕을으로 가다가 재밌어서 한장 찍었다. 이 사거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든든한 사거리일거 같다. 좌 춘추 우 유신.. ㅎㅎㅎ
신라의 수많은 왕릉중 유일하게 비석이 있는 왕릉인 김춘추 태종무열왕릉을 찾았다. 태종무열왕은 지금 선덕여왕에 어린역으로 나오고 있는 김춘추인데, 선덕여왕과 진덕여왕 다음에야 왕위에 오른다. 왕위에 오르기 전에 고구려에 볼모로 잡히고 당나라에도 한참동안 가있는등 외교적으로 복잡하고 어려웠던 시대의 신라의 대표 외교관으로서의 역할을 했다고 한다. 재위중에 백제와 통일을 이루어내는 위업을 이루지만, 아쉽게도 재위기간은 겨우 8년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 태종무열왕의 맏아들인 문무왕이 비로소 고구려까지 포함하는 삼국통일을 이루게 된다. 아래 비석은 본 왕릉이 태종무열왕의 왕릉임을 알려주는 이름표인 태종무열왕릉비석이다. 당나라의 영향을 받은 최초의 비석이라고 한다. 당시 무열왕과 신라의 기상이 그대로 반영되어 거북이의 목이 하늘을 찌를듯이 조각되어 있으며, 뒷발은 당장이라도 튀어나가기 위해서 뒷발엄지발가락을 땅속 깊숙히 박고 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뒷발가락의 갯수는 5개가 아닌 4개라고 한다. 앞발가락은 정상적으로 5개이고.. 아래 사진으로 발가락수를 한번 세어보자. ㅎㅎ
태종무열왕릉이다. 선덕여왕과 2대 밖에 차이나지 않지만 왕릉의 모습이 사뭇 다르다. (위의 선덕여왕릉 참조..) 아마 선덕여왕릉의 하단부 자연석기단이 무열왕릉에는 봉분에 묻혀진게 아닐까.. 그래서 그런지.. 봉분 하단부를 보면 삐죽삐죽 튀어나온 자연석들이 좀 보인다. 동시대를 산 유신랑 묘의 화려함에 비하면 역시 상대적으로 소박한 점이 느껴지지만 당시에 신라의 기세로볼때 얼마나 엄청난 규모로 장례를 치뤘을지 상상해보니 그냥 소박하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태종무열왕릉을 뒤로하고 경주국립박물관으로 향한다. 아뿔사.. 박물관 앞에가니..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란다. 오늘? 월요일이다. 아쉽지만 박물관내 전시된 유물들은 관람을 못하고 밖에 모셔져있는 성덕대왕신종을 보러갔다. 일명 애를 통째로 넣어서 주조했다고 전해지는 에밀레종이다. 매시간 정각과 삼십분에 녹음해놓은 에밀레 종소리가 스피커를 통해서 울려퍼지는데.. 암만해도 에밀레..라고 들리지 않는다. ㅎㅎ
안압지는 신라시대 궁궐이 있었다고 추정되는 곳의 앞쪽에 위치한 별궁이었다고 한다. 통일신라 이후 너무 관리가 안되어서 오리와 기러기가 판을 쳤다고 해서 안압지라고 이름이 바뀌었다고 하는데... 출토된 기왓장에 적힌 이름을 근거로, 원래 이름은 월지 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래 사진을 보라.. 안압지, 아니 월지는 정말 아름답다..
안압지 내 호수를 유유히 헤엄치고 있는 자라를 찾아보자!! ^^ (오른쪽을 잘 찾아보면.. ^^)
지나가다가.. 안압지 맞은편에 위치한 선덕여왕 촬영지에 들어가보았다.
화랑들이 말타고 넓은 들판을 달려가던 그 장면의 배경이 된곳이다. 화랑의 기운이 느껴지는가? ㅎㅎ
넷째날..
오늘은 경주가 자랑하는 밀레니엄파크 관광하는 날이다. 환경에 문제가 많을것으로 우려되는 방사능폐기물처리장을 경주가 유치하면서, 정부로부터의 보조금이 풍족해져서 이런 사업을 야심차게 추진하게 되었다고 하니, 아이러니하지 아니한가...
밀레니엄파크 안에는 엄청나게 큰 성덕대왕 신종모양의 건물이 있다. 오른쪽 아래에 우리 가족이 있으니 그 크기를 가늠할수 있을거 같다. 그런데 이 건물의 용도는...?? 햄버거 가게다. ㅎㅎ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화랑들이 자기들의 무공을 뽐내는 경연대회를 열었던 그 장소다. 여기서는 실제로 화랑쇼를 보여준다
지나가다가 배경이 이뻐서 아내의 독사진을 찍어주려고 하였으나 말썽꾸러기 둘째가 좀체 말을 듣지 않는다. 옆으로 더 가라고 얘기해도 버티고 있는 둘째녀석..
둘째에게 계속 나가라고 소리쳤더니 엉덩이는 붙여놓고 머리만 나갔다.. 말썽꾸러기녀석!
앞으로 닌텐도는 없다는 협박에 겨우 나간 둘째녀석. 힘들게 아내의 독사진을 찍었다.
아내의 독사진을 찍자마자 번개같이 달려들어온 첫째와 둘째녀석들.. 이번에는 모자간의 단체사진! 찰칵!
아빠는 맨날 찍기만 하라는 법이 있는가.. 이번에는 나도 애들과 같이 한장 찰칵!
뭔가를 저장하는 용도로 사용했을거 같은 정체불명의 집..에서 첫째아들과 꼽사리 낀 둘째아들
드라마 선덕여왕의 실질적인 주인공인 미실의 집으로 사용되는 건물이란다. 낯익은가... ㅎㅎ
화랑들의 산채.
잠깐 즐겨보는 괴물놀이와 시체놀이. ㅎㅎ
밀레니엄파크가 자랑하는 수중뮤지컬 미시랑. 세가지 보물로 오랑케를 무찌르고 국가의 안녕을 도모한다는.. 이때 등장하는 보물이 신검, 갑옷, 그리고 그 이름도 유명한 만파식적이다. 만파식적은 뮤지컬 중 성덕대왕신종 버거가게 지붕에서 솟구쳐 올라온다. ㅎㅎ
이로써 4일간의 경주탐방기 - 선덕여왕의 흔적을 찾아서..를 모두 마쳤다. 가족과 함께한 여행이라서 더 보람있었고, 몰랐던 역사적 사실들을 알게되어 아주 유익했던거 같다. 차로 귀경하면서 다음 여행 행선지를 고민해보는 행복한 시간을 가질수 있어서 즐거웠다. 언젠가 아주 나중에.. 우리 애들이 이 블로그를 보면서 그때 그곳을 다시 떠올릴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참고로, 여기올린 모든 사진은 새로 개통한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들이다. ㅎㅎㅎ




